어린시절 팽나무 아래서 뛰어 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컴퓨터가 없고 지금처럼 놀이기구가 없던 시절, 팽나무 아래서 말타기,깡통차기 등으로 놀이 문화를 대변했던 시절,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은 이 곳에서 하루의 일과를 소담스럽게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팽나무를 찾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팽나무 옆에 수도가 마련되어 있어 마을 사람들의 식수를 해결했던 곳이기도 하지요.
도두리의 설촌에 관해서는
약 370년경 광산 이씨의 조상이 설촌하였다고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들봉 아래가 되므로 도돌, 도들, 도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두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도두1동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에는 행정동인 도두동에 속하게 되었다.
시의 서부 해안가에 있는 동이다. 2006년 12월 현재 면적은 2.00㎢이며, 총 575세대에 1,582명(남자 827명, 여자 7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도두2동, 서쪽은 이호1동과 이호2동, 남쪽은 노형동, 북쪽은 바다와 각각 접하고 있다. 도두동 전체 인구의 약 70%가 거주한다.
<출처:디지털문화대전>
겨울이어서 나무가지에는 잎이 다 져서 없고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의 발길도 없습니다.
제주에는 마을어귀마다 대부분 팽나무가 심어져 있는데요.보통 오래전부터 느티나무, 팽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팽나무가 70%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의미와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주 섬의 북쪽, 즉 ‘섬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도두(島頭)’에서 유래했다는 설, 제주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 즉 ‘한길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그리고 ‘도 +돌(石)’ 또는 ‘돋은’ 의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옛날에는 이 쉼팡이 아주 커 보였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작아져 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이 동에는 도두리, 다위, 몰래물, 흘캐 등 여러 개의 자연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두1동, 신사수마을, 신성마을, 다호마을 등 4개의 자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나중에 마을에서 준비하여 마련한 모양입니다.
이 팽나무 옆 올레길에는 이 겨울에도 국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본래 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돌, 도들, 도도리 혹은 도두리라 했다. 구 한말까지 오도롱, 백개, 월랑, 도두리, 몰래물, 다호, 현사 등 7개 마을이 한 개의 동을 이루고 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도두리라는 명칭으로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되고 종래 25개 리가 40개 동으로 개편될 때 제주시에 편입되어 도두1동과 도두2동으로 분리되었다. 1962년 제주시 40개 동이 14개 행정동으로 개편되면서 이호동이 분리되었고, 1996년에는 동 경계가 조정되면서 도두동 일부가 노형동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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