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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식물,풍경/초본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 피뿌리풀

by 코시롱 2018. 5. 24.

 

 

피뿌리풀 <Stellera chamaejasme L.>

-팥꽃나무과-

 

 

 

오늘은 도금양목 팥꽃나무과의 피뿌리풀로 하루를 열어 봅니다.

몽골의 침략과 예속화에 반발하여 삼별초군이 난을 일으키고 진도와 제주도를 근거지로 대항하자
고려조정과 몽골에서는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삼별초군을 토벌하였습니다.
이때 몽골군이 제주도에 군영을 설치하고 군마를 기르게 되었는데
말먹이로 가져온 건초에 섞여 들어오거나 말의 치료제로 들어왔다는 추측도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몽고에서는 이 피뿌리풀이 흔한 잡초라고 하는데,

이 피뿌리풀을 몽고에서는 '달랑투루'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 의미는 '70개의 머리를 가진'이란 뜻인데,아마 꽃이 부케처럼 모여서 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가졌지 않나 싶네요. 

 

 

 

 

 

 

 

 

 

우리나라식물명감(1949,박만규)에는 처녀풀,피뿌리꽃이라고 하고 있고,

조선식물향명집(1937,정태현 외)에서는 북한명으로 처녀꽃이라고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황해도 이북에서도 자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만날 수 있었던 피부리풀이 무분별한 도채로 인하여

만나기 어려운 식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고 지금은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된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매년마다 보는 피부리풀이지만 그 희소성 때문에

알려 주기도 꺼려하는 식물이 되어 버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피뿌리풀의 이름 유래에 관하여 처음에는 흰색의 꽃잎을 열어 젖히다가 서서히 붉은 핏빛으로 물들고

뿌리까지 붉은색이라고 하여 '피뿌리풀'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지만 여러 자료를 보면 뿌리가 붉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뿌리가 붉은 것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이 아니라 꽃이 피면 선홍색으로 물들어 가는

과정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제주의 오름에는 이 피뿌리풀을 많이 볼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아이를 만나는 것 조차 어려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무분별한 도채가 이루어지면서 제주에서 가장 귀한 꽃이 되어 버렸지요.

 

 

 

 

 

 

 

 

피뿌리풀의 고향인 몽고,중국.시베리아,네팔 등 비교적 추운지방에서만 자란다고 나와 있습니다.

북방계 식물로 알려져 있는데 제주에서 어떻게 자생하게 되었는지는 자료가 없습니다.


처음에 설명하였 듯 고려가 몽고에 항복하면서 제주에는 탐라총관부가 설치되고,그 이후 제주의 오름은

군마를 기르고 방목하는 장소가 되면서 몽고의 말과 함께 들어 왔다는 이야기만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피뿌리풀의 꽃말이 바로 '슬픈 정열'이라고 하지요.

꽃이 너무 고와서 도채되는 수난을 피뿌리풀이 알았을까요?

그래서 더욱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도 고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