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들기·자전거·미니어쳐·전시/전시탐방·박물관

우리나라 최고의 궁 경복궁을 가다..

by 코시롱 2011. 2. 24.

 

경복궁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고 하는

경복궁을 포스팅 해 봅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담아 보고...시작합니다.

 

 

 

경복궁의 복원은 고종 중건 완료시점인 1888년을 기준으로 하여 당시 현판을 영건도감제조인 임태영이 썼다는

 기록(경복궁영건일기)이 있고, 현판 사진(유리원판)을 디지털로 복원함에 따라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광화문 현판을 담아 봅니다.

경복궁의 지도를 올려 보면서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광화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매표소에서 매표하고,

흥례문을 지나갑니다.

 

 

 

이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흥례문을 지나면, 근정전으로 행하는 근정문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복궁 지도 참조>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都城)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을 지킨 궁궐로서, 궁의 왼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근정전은 왕의 집무실이라고 하는 신하들로부터 조례를 받는 곳입니다.

일종의 집무실이지요..

근정전을 보겠습니다.

 

 

 

<근정전의 내부 모습> 

 

이제 근정전을 지나 강녕전으로 향해 봅니다.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습니다.

 그러나 1895년에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고,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의 행동을 하여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는

역사의 불운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교태전으로

이 경복궁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이 교태전 뒤에 있는 아미산의 굴뚝 때문입니다.

철우가 이 굴뚝을 보기 위해 경복궁을 가자고 했는데,

굴뚝이 보물이 되다니...

 

보물 811호가 있는 곳입니다.

경복궁아미산의굴뚝(景福宮峨嵋山의굴뚝)

 

 

조선 태종은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고 경회루를 세우고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교태전 뒤뜰에 인공동산을 세웠는데 이를 아미산이라 하였습니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종 2년(1865) 경복궁을 고쳐 세울 때 만든 것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고,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습니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고,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습니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제 진사들이 다 담는 경회루를 담아 봅니다.

 

 

 

 

이제 경회루를 지나 신무문으로 가 보는데요.

제주 촌놈이 청와대도 담아 보네요.

포토 존이 있습니다.

 

 

 

 왼편이 신무문이고 신무문 뒤로 청와대가 보입니다.

지금은 일반인에게 여기까지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신무문 뒷편이 경복궁의 후원이었는데,

일제시대때 총독관저를 짓느라 많은 행각과 전각들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 내려와

집옥재를 들려 향원정에 이릅니다.

 

<집옥재의 모습>

이제 향원정을 담아봅니다.

 

 

 

경복궁 안에 있는 2층 정자. 고종이 건청궁(乾淸宮 :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에 기거하던 1867년 경회루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그 중앙에 지은 것입니다.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 다리를 놓아 취향교(醉香橋)라 했는데, 이 다리는 6·25전쟁 때 파괴되고 현재의 다리는 1953년 남쪽에 새로 놓은 것이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모습을 담아 보면서...

 

 

 1974년부터는 전국적인 민속자료의 수집과 조사, 건물내부의 진열시설 제작 등에 착수하여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이란 명칭으로 개관하였으며,

1979년에는 문화재관리국 소속에서 중앙박물관 소속의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개편되었습니다.

 1982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옛 중앙청 건물로 이전되면서 구중앙박물관건물을 민속박물관으로 활용하게 되었으며

 1992년 대대적인 시설공사를 완료하여 명실상부한 국립민속박물관으로서의 체제를 잡았고,지하 1층, 지상 3층에 옥탑층을 이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