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악,원물오름이라고도 합니다.
동광검문소 가기전 오름 기슭에 충혼묘지가 있는
오름으로 소들이 방목하고 있어 아침 일찍 답사를 하고 내려 왔습니다.
서귀포시 동공리 산 41번지 일대의 오름으로 표고 458미터 비고 98미터의 말굽형오름입니다.
입구에 있는 방목장의 문 옆으로 올라 가면 되는데 길이 외길이라
조금 있으면 소들이 모두 출근하면 올라가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위치를 보겠습니다.
다음 사진은 원물의 모습입니다.
조선시대에 대정 원님이 제주목을 다녀오다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풀었다하여 `원물`이라 했으며, 그 주변에 있는 이 오름을 이 샘의 이름에 연유하여
`원물오름`, `원수악`이라고 했다는 설과 산 기슭에 샘물이 있고 元(원)이 목장을 설치하여 그 물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원물` 이라고 이름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목장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해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찾아 올라가면 되는데,
아래의 사진에서 왼편으로 하여 올라 갔습니다.
"과거에 대정에서 제주로 가는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院이 있었는데, 이 곳에 그 院이 있었고, 院에서 이용하는 물이 이 오름 남쪽에 있었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오름 정상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민간에서는 `고고리바위` 또는 `고고리岩`이라고 부릅니다. 이 내용 끝에 고고리바위를 올려 놓아 보겠습니다.
올라 가는데 비가 온 뒤라 땅이 질퍽 질퍽...그래도 소들이 출근하기 전에 후딱 다녀 와야 합니다
이 질퍽한 길을 올라서
또 올라서...보니 발 아래에...
풍광이 펼쳐집니다.
자그마한 언덕들이 정상을 향해 뻗어 올라 남북의 두 등성이를 이루고 이는 서쪽으로 말굽형의 펑퍼짐한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고.
등성이는 민틋하고 남북의 두 봉우리 사이에는 곱디고운 잔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두 오름이 길게 가로누운 형체를 띠고 있는데, 이는 감낭오름이 북동쪽 기슭자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북쪽 봉우리(정상)에는 바위들이 박혀 있고, 서쪽으로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으며, 일부 사면에 삼나무와 해송이 조림되어 있고, 그외 지역은 풀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남쪽 기슭에 `원물`이라고 부르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은 예전에는 식수로 유용하게 이용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우마용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출처:김 종철의오름 나그네 >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정상에는 이렇게 작은 바위가 앉아 있는데,
이 오름 근처 감낭오름에는 벌써 소들이 출근하여 있습니다.
멀리 산방산과 고고리 바위 동쪽에 위치한 작은 바위들
모습입니다.이 바위 근처에 경방 초소가 위치하여 있고 옛날 초소인 듯한 집이 방치되어 흉물 스럽게 남아 있습니다.
정상 근처에 또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묘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름 올라 갈때마다 정상 근처에 있는 묘를 보고 오름 정상에 쓸때 그 옛날 도구들도 없이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섭니다.
오름 밑에 있는 충혼묘지를 바라보고 담은 사진입니다.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주차장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아주 작게 제 차가 하나 보이시지요.너무 이른 아침이라 제 차가 홀로 있네요.
그 앞에 보이는 것이 이 오름의 이름을 말해주는 원물입니다. 물통은 총 3개가 있는데, 지금은 마소의 좋은 식수가 되어 있습니다.
다음 사진이 바로 "고고리 바위" 입니다.
`고고리`는 `꼭지` 또는 `과실의 줄기에 달린 곳`의 뜻을 가진 중세어이자 제주도 방언입니다. 원물오롬`과 `감남오롬`을 한때 `감남오롬` 또는 `원물오롬`으로 혼동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옛 지도에 `원믈오롬`과 `감남오롬`은 엄연히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원물`은 여관이라 할 수 있는 院에서 이용했던 물이라는 뜻입니다. <출처:김종철의 오름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