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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제주 문화유산 답사

오현단

by 코시롱 2009. 1. 9.

오현단

조선시대에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5현)을 기리고 있는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마련되어 있다.


5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이다.

 <출처:문화재청 홈피>

여기서 귤림서원 터의 표지석을 보겠습니다.

 

이 표지석은 오현단 임구에서 남쪽으로 올라간 삼거리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영주십경의 하나인 귤림추색으로 알려진 옛 터입니다. 특히 옛날 이 일대에는 많은 과원이 조성되어

가을에 귤이 있을때 온 천지가 황금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다 합니다."

 

오현단 입구의 모습입니다.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이 중심이 되어 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아놓았는데, 원래는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기 위한 충암묘를 지은 것이 그 시초이다.

 <출처:문화재청>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이 묘를 장수당 남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뒤, 숙종 8년(1682)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김정 선생·송인수 선생·김상헌 선생·정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5현을 배향하게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서원이 헐리게 되어,

그 터에 이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와,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있다.

 

다음은 옛 오현로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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