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첫 주말 한라산 산행을 하였답니다.그 소식으로 하루를 열어볼까 하네요.
오늘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한라산을 올랐는지 문헌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윗세산장에 도착한 후 그 모습을 보여드리며..
한라산 등반기록을 처음으로 문헌에 남긴 것은 임제의 '남명소승'이라고 합니다.
임제는 1577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나,정치에 뜻을 두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람을 했던 학자입니다.
임제는 1577년 11월에 제주에 내려왔다가 다음해인 1578년 3월에 돌아가며 남긴것이 '남명소승'입니다.
만세동산 가기 전에서 등반하는 산행객들의 모습을 담아 보았답니다.
임제는 한라산 존자암에 머물며 날씨가 풀리기를 기원하는 발문가를 지었는데,
'하계의 어리석은 백성이 소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신이시여~
나의 소원은 바람 맑고 구름이 걷히는 것입니다.
밝은 아침에 밝은 햇빛을 보게 하소서.'
1600년대 오면 어사의 신분으로 한라산에 오른 이도 있었는데요.
1601년에 김상헌은 한라산산신제를 올리기 위해 한라산을 찾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당시 제주에서 소덕유,길운절의 역모사건이 일어났는데,선조의 안무어사 자격으로 김상헌이 제주에 왔다가
한라산을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주목사의 자격으로 한라산에 오른 이들도 있었는데,
이형상과 이원조 목사가 기록을 남겨 두었는데,특히 이형상 목사의 '남환박물'에서 한라산의 생태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연산홍,동백,산유자,녹각,송,비자,측백,황엽가시율,후박,등 다양한 식물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다고 하네요.
이원조 목사는 '나는 일찍이 등산하는 것이 도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왔다.'며 한라산 등반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던 인물입니다.
특히 이원조 목사 재임시절에 가파도와 우도에 사람을 살게 했다고 합니다.
김상헌(金尙憲)의 〈남항일지 南航日誌>에 보면
한라산의 기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금강산과 묘향산은 이름만 높을 뿐, 한라산의 기이하고 수려함에는 따라오지 못하리라.”
한말의 최익현(崔益鉉)은 1875년(고종 12) 3월 한라산을 등반한 그는 〈한라산기 漢拏山記〉에서
“산은 도중에서 포기하면 그로 말미암아 뜻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좀더 태연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인고의 정신을 한라산행에서 찾으려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선조의 7남인 인성군(仁城君)의 셋째 아들인 이건(李健)은 〈제주풍토기 濟州風土記〉에서
“한라산에는 곰·호랑이·이리 등과 같은 짐승은 없고, 소나 말이 잘 자라며, 사슴이 놀라울 정도로 번식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고 합니다.
1767년(영조 43) 귀양에서 풀려 돌아가게 되자 한라산에 올라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임관주는,
“푸른 바다는 넓고 넓어 아득한데/한라산은 그 위에 떠 있네/흰 사슴과 신선이 기다리는/이제야 그 상봉에 올랐네."
1937년의 이은상의 <한라산기도>에서는
기행문을 통하여 “아름답다. 신비하다. 저 한라산. 저 제주도. 뉘가 여기 이같은 절해운도(絶海雲濤) 속에
한덩이의 땅을 던져 해중선부(海中仙府)를 만드셨나.” 라고 적고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옛 문헌으로 소개해 본 한라산산행기였습니다.
오늘도 고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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