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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식물,풍경/여행·산행

아들과 떠난 마라도 기행

by 코시롱 2011. 3. 14.

 

주말을 이용하여 마라도를 다녀 왔습니다.

이젠 중학생이 되어 버린 아들과 함께 설렌 마음으로 마라도를 가 봅니다.

송악산 선착장에 도착하니 시간이 남아 송악산 해안에서 이리저리 놀다가

12시 50분 출발하는 배를 타고  마라도를 가 봅니다.

우리나라의 최남단 "마라도"

제주에 살면서 아들이 4살때 와보고 같이 오기는 무려 11년이 지났습니다.

 

 

 

마라도 가는 배편은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있고,

또 하나는 이 송악산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있습니다.

 

 

 

송악산호를 타고 배 뒷전으로 가 갈매기들 따라오는 장면을 담아 봅니다.

  '동경 120도 16분 3초, 북위 33도 66분 81초로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행정구역상 <남제주군 대정읍 마라리>에 속해 있습니다.  
 제주남쪽 끝자락의 산방산을 끼고 오목하게 들어선 산이수동에서 남쪽으로 11.5Km 뱃길 30분이면 닿게 되는 마라도.

 

 

 

그리고 산방산과 형제섬을 한 컷에 ...

배에서 담으니 한 화면에 쏘옥 들어 옵니다..

송악산 올라가야 중턱에서 담을 수 있는 광경이지요.

 

 

이제 마라도에 가기전

가파도도 담아 볼까요?

 

 

 

 

마라도 입구에 이르니...

멀리 마라도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마라도 주민들이 선착장에 몰려 나와 있습니다.

 

 

 

배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담은 사진...

한라산이 보이면 금상첨화인데... 한라산은 연무때문에 보이질 않고..

 

 

 

 마라도에 사람이 입도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83년(고종21년)으로 전해옵니다.
 제주사람 김명오씨 일가가 파산, 본 섬에는 거처할 곳이 없게 되자 마라도에 사람이 살 수 없다는 풍문에 따라 간청 입도 허가를 받았다고 하네요.

마라도에 도착하면 제일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골프장에 있어야 할 골프카트..여행관광카트가 즐비하게 서 있습니다.

 

 

우스갯 소리로 마라도의 명칭에 관한 "마라"의 뜻은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고,

다만 이런 우스갯 소리가 전해집니다.  많이들 아시는 것이지만요.

 

마라도와 가파도가 드지고 외진 것을 빗대어 제주도 사람들은 이 두 섬사람과 거래한 돈은

 '갚아도(가파도)그만, 말아도(마라도)그만'이라는 우스갯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와

 섬이 하도 험한 파도속에 묻혀 있었기에 '오지도, 또 가지도 마라'는 데서 이름이 정해졌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랍니다.

 

이제 마라도를 한바퀴 걸어서 돌아 보겠습니다.

사진찍고 카트 안타고 걸어도 40분 정도면 충분!

 

 

 

해안선을 따라 빙 둘러 보는데,

처음 만나는 곳이 바로 할망당입니다.

마라도의 기록으로는 조선조 숙종 28년(서기 1702년)에 제주목사 이형상이 순력중 하공 김남길로 하여금 제작토록 한 「탐라순력도」<대정강사 >편에 의하면

 <마라도(摩羅島) >로 표기되어 있다. 이로 미뤄 짐작하건데 칡넝쿨이 우거진 섬이란 뜻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 할망당은 마라도 해녀들의 물질을 지켜주는

마라도할망당,처녀당이라고도 한답니다.

 

사람들이 걸어서 또는 카트를 타고 마라도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10여분 남짓 걸어서 최남단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까지 왔습니다.

원래 마라도는 가파리에 속해 있었고, 이 섬은 지번이 <가파리 산 7번지 >이고 행정구역상 <가파리 8반 >이었으나,

 1981년 「가파리」에서 분리되어 행정리 「마라리」가 되었습니다.  
1958년에 마라분교를 세운 뒤 한때 학생수가 30여명을

넘기도 했으나, 지금은 3-4명으로 제일 작은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 마라분교를 지나면

마라도에 불교,성당,교회의 종교가 다 있습니다.

먼저 불교의 기원정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기원정사를 지나..

마라방송국이란 팻말이 서 있는...

그림같은 집을 지나고...

 

 

최남단 표석을 만납니다.

마라도에는 조선조 고종 21년(1884년) 모슬포에서 김성종(金成宗), 이달선(李達先선),나찬석(羅贊石), 김우찬(金友贊), 김모(金某) 등이 입도(入島) 개척에

 착수하여 한편 어채(魚採)도 하면서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1981년 4월 1일 가파리(加波里)에서 분리 마라리(馬羅里)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습니다.

 

 

이제 아드님의 인증 샷을...

무슨 로봇 같아요..

너무 긴장했나?

  대한민국의 최남단이라는 위치를 알리기 위하여 1985년 10월 2일 남제주군에서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동경126。 16´30˝ 북위33。 06´30˝위치에

 대한민국 최남단이라고 쓰인 비를 세웠습니다.

 

 

이 최남단비의 바로 남쪽에는 장군바위가

우람하게 서 있습니다.

바위가 장군의 형태처럼 되어 있어 '장군바위'라 부르고 있는데,
옛날부터 사람이 이 바위에 올라가면 파도가 세어진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장군바위를 지나

이제는 지붕과 집이 이색적으로 서 있는

마라성당을 만납니다.

 

 <마라도성당 모습>

 

조금 더 지가가면 마라도등대를 만날 수 있는데요..

마라도의 푸른 잔디밭에 서 있는 이 등대는

동중국해와 제주도 남부지역을 지나는 육지초인표지로서의 구실을 하는 아주 중요한 등대로서,일제 강점기의

1915년 3월 건립되었고,1987년 3월 새로 개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높이는 16미터에 달합니다.

 

 

이제 해안선을 따라

다시 선착장으로 향해 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