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자락에 있는 남매탑의 전설입니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산 3-1번지에는 크고 작은 석탑이 다정하게 서 있다. 동학사에서 북쪽으로 난 가파른 산길을 2km 정도 오르면 넓직한 터에 위치한 이 탑은 청량사지 7층석탑(보물 제1285호)과 청량사지 5층석탑(보물 제1284호)으로, 일명 ‘남매탑’으로 불린다. 석탑 옆에는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자리해 석탑을 관리하고 있다. 암자보다 석탑이 유명한 이 곳에는 한 스님과 여인의 운명적인 ‘만남과 수행’의 드라마틱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출처:불교신문>
<사진:청량사지 7층석탑과 청량사지 5층석탑 보물 1285호와 1284호로 지정>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하자 백제의 왕족이였던 한 사람이 계룡산으로 들어왔다.
“내 여기서 수행자가 되어 나라를 잃은 슬픔의 망념을 벗어 던지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현재 남매탑이 자리하고 있는 청량사지 터에서 삭발염의를 하고 스님이 됐다.
그는 풀잎으로 듬성듬성하게 토굴을 지어 자그마한 부처님을 모시고 평생 수행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오고 가는 사람 한명 없는 산중에 부처님을 시봉하며 살기로 마음먹으니 그동안 나라를 위해 싸운 일이 한낱 부질없는 물거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
스님은 ‘모든 현상세계는 마치 꿈같고, 환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아서, 또한 이슬과 번개 같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가슴속에 새기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눈이 억수같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데 문 밖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큰 동물이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 끙끙거리는 소리 같았다. 깊은 산중이라 평소에도 산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오는 터라 스님은 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아니, 호랑이가 아닌가? 덩치는 산 만한 호랑이가 왜 여기에 와서 저렇게 고통스러워할까?” 스님은 겁이 나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짐승에 대한 측은심이 생겨 조심스럽게 호랑이의 행동을 예의주시해 보았다.
“어라, 저 녀석이 뭔가를 잘못 삼킨 모양이구나. 목에 뭔가 걸려 있는 게 틀림없어.”
며칠 동안 고통 속에 시달린 듯 호랑이는 기운이 없었다. 이미 목구멍에는 피멍든 상처가 깊어 보였다. 사람을 헤칠 기력이 없음을 확인한 스님은 호랑이 곁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러자 호랑이는 마치 자신의 목구멍에 걸려 있는 무언가를 제거해 달라는 듯 목을 크게 벌렸다.
“그래, 그래. 내가 네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해 주마.”
이렇게 말한 스님은 호랑이의 목 안으로 손을 넣어 잡히는 무언가를 밖으로 빼내보니 날카로운 동물의 긴뼈가 나왔다. 목에 가로로 걸려 며칠동안 호랑이를 괴롭혔던 것이다. 스님은 호랑이에게 긴 법문을 했다. “호랑이야, 아무리 네가 미물의 축생이라도 해도 네가 헤치는 짐승들의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 지금 너가 당하는 고통은 너로 인해 죽은 짐승의 고통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함부로 살생을 하지 말도록 하여라.”
호랑이는 스님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넙죽 절을 한번 한 뒤 숲으로 사라졌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났다. 대지는 또 하얀 눈으로 휩싸였고 사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스님은 새벽 일찍 일어나 수행하는 토굴을 나와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가는데 호랑이가 토굴 안으로 무언가를 떨어뜨려 놓고 사라졌다.
“며칠 전 목에 뼈가 걸린 호랑이가 틀림없는 것 같은데….”
스님은 가까이 가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사람이 아닌가. 보아하니 여자 같은데 이 산중에 어떻게 호랑이에게 물려 왔담?” 혼절한 듯한 여인을 토굴 안으로 들인 스님은 물수건을 따뜻하게 데워 머리에 올려 놓으니 여인은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여기가 어디죠?” 겁에 질린 여인은 사시나무 떨듯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걱정 마세요. 당신은 호랑이게 물려와 이곳에 오게 된 것이오. 이제 호랑이는 없으니 안심해도 좋소.”
그제야 여인은 안심이 되는 듯 한숨을 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루를 꼬박 잔 여인은 다음날 깨어나 자신이 겪은 일을 상세하게 말했다.
<사진 : 상원암의 모습>
“저는 경상도 상주에 사는 김화공의 여식이옵니다. 제 나이 열여섯이 되어 집안에서는 혼사이야기가 오갔고, 결국 저는 이웃 마을 양반댁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첫날 밤을 맞은 날 소녀는 소피를 보기 위해 측간을 다녀오기 위해 나왔다가 커다란 불빛을 만나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 눈을 떠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소녀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입니까?”
“아, 그려셨군요 낭자. 여기는 계룡산 중턱의 토굴이오. 아마도 호랑이는 그대를 헤치려고 하지는 않은 것 같소. 다만 제가 며칠 전 목에 길다란 뼈가 걸린 호랑이를 구해 주었는데 그 호랑이는 저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여인을 물어다가 내 토굴에 놓고 간 게 틀림없소. 이제 큰 화를 면했으니 기운을 차려 어서 남편과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빨리 가시오.”
후대까지 기리기 위해 2기의 석탑 조성
이 말을 하자 갑자기 여인은 대성통곡하며 자신을 한탄하기 시작했다. “스님, 이제 소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소녀의 집안과 마을에서는 제가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었을 것일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소녀는 이미 스님의 거처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여인의 흐느낌에 스님은 당황했다. “그러면 어찌하면 된단 말이오. 해결책을 말해 보시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입장을 또박또박 말했다. “어차피 저는 이미 한번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소녀를 어여삐 여기시어 아내로 맞아 주시면 평생 지아비로 모시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정중하게 말했다. “여인의 사정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소승은 이미 부처님의 제자가 된 몸입니다. 여색을 멀리하기로 다짐하고 평생 불도(佛道)를 닦기로 한 몸이니 그대의 여인이 될 수가 없소.”
하지만 여인은 오갈 데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을 받아주길 간청했다. 며칠을 고민한 스님은 여인에게 제안을 했다. “그대의 딱한 처지를 이해할 수 있소. 그러니 내가 제안하겠소. 그대와 나는 오늘부터 오누이의 인연을 맺으면 어떻겠소. 물론 그대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오. 그리고 평생 이곳에서 비구와 비구니로 살면서 수행하다가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드는게 어떻겠소?” 여인은 스님의 제안에 대 환영의 뜻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비구니가 되어 평생 이곳에서 수행하며 살다가 세상과 하직하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여인은 스님과 오누이의 인연을 맺고 출가한 후 비구니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약속한대로 한날한시에 열반에 들었다. 두 스님이 열반에 들자 이들의 아름다운 수행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두 수행자의 행적을 후대까지 기리고자 2기를 석탑을 조성하고 ‘남매탑’이라고 불렀다.
<이상 내용출처: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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