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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제주의 보호수

정실마을의 보호수

by 코시롱 2009. 1. 11.

정실마을

정실마을이 형성된 때는 약 400여 년 전인 1567~1608년 김해김씨가 정착하면서부터이므로 오라동 정실 본향도 이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실마을의 팽나무 보호수입니다.

품격 : 정자수  수종 : 팽나무

수령 : 5백년  수고 : 15미터

나무둘레 : 4.1 미터  고유번호 : 13-1

지정일자 : 1981 년 12눨 12일  주소 : 오라 2동 628

 

 오라1동은 속칭 '모로냇가름'이라고 하며 한내를 끼고 있다. 마을 남쪽에 '내머리왓'이 있고, 오라2동은 '사평리(沙坪里)', '연미(淵味)',

'동도노미(정실, 井實)' 등의 자연취락을 포함하고 있다.
<출처: 이하 제주시청 홈페이지>

 오라동의 한 자연취락인 연미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 문(文)씨에 의해 설촌되어 호수 103여 호의 마을이었으나 빈번히 화재가 발생하므로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네에 큰 연못을 팠다. 연미라는 마을 이름은 이 연못에서 연유한 것으로 물이 생수같이 깨끗하고 물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 후 이 연못은 매립되고, 1948년 4·3사건으로 인하여 마을은 완전 소실되었었다. 피난갔던 사람들은 사건이 끝난 후 100여호 만이 돌아왔으나,

1973년 3월 5일 건설부고시 제88호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인구의 증가도 둔화되고 발전의 템포도 빠르지 못했으나 행정·의회·시민이

하나로 힘을 모아 끈질긴 해제노력을 쏟은 결과 1999년 7월 22일 전면해제 되었다. 이 마을의 유적으로는 조설대(朝雪臺)와 문연사(文淵社)가 있는데

 한말인 1905년(광무 光武 9) 이 마을에 살던 이응호(李膺鎬)가 중심이 되어 선비들의 모임인 '집의계(集義契)'를 결성하고 구국을 도모하던 장소이다.

 정실마을은 조선조 선조(宣祖) 때에 김해(金海) 김(金)씨가 여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당시에는 이 마을의 지형 때문에 '도래뫼'라고 불리웠다.

 

 또한 1910년께는 오늘의 제주시 오등동과 죽성 등 마을들을 한데 묶어 한북리(漢北里)라고 부른 적도 있었으나 한천(漢川)을 중심으로 동서 간의 분쟁이 생겨 한천 서쪽 동네가 오늘의 정실 쪽으로 옮겨 왔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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