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귀1리 마을회관 옆으로 나 있는 군도를 따라 가면 오름 기슭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오름은 상당기간 침식을 받아 오름 원래의 형태는 알아볼 수 없으나
오름의 구성물질이 화산쇄설성퇴적층과 용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름을 중심으로 주변에 커다란 응회한 것이 침식되어 일부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제주시 애월 하귀리 688-1번지 일대의 오름으로 표고는 84미터 비고는 50인 오름입니다.
올라가니 이 산불조심 현수막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올라가는 길이 여럿 있는데요, 월령사의 입구로도 갈 수 있고 이렇게 오름 동쪽에서도 오를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능선에 체육시설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이 오름의 특징은 오름에 바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과거 삼별초의 격전지로서 여몽연합군 삼별초군을 격파한 곳이라 하여 파군봉이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항파두리성은 2,5km쯤 떨어진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굼지란 바구니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정상에 올라 하귀리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해송이 주종을 이루면서 아카시아나무 등의 잡목으로 숲을 이루고 있고, 북사면쪽에는 북제주군 농촌지도소, 남동쪽에는 월령사(태고종)라는 절이 있습니다.
월령사는 조금 있으면 보여 드립니다.
정상에서 해안을 바라본 모습을 보시지요.
이제 내려오면 월령사를 보겠습니다.
파군봉(破軍峰)을 끼고 흐르는 병풍천 지경에는 예로부터 ‘부처물’이라는 용천수가 샘솟는 부처물동이 위치한다. 부처물동 인근은 조선시대 이래로 월령사(月瀛寺)가 자리 잡고 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주위의 지형은 비교적 평탄하나 부처물이 있는 곳에는 하천과 산이 있어 다소 비탈을 이룬다. 현재 부처물 주위로는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부처물의 동쪽, 남쪽, 북쪽에서는 기와편이나 도자기편이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이곳에 전해오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사찰이 무너지면서 주지 스님이 쓰던 대야가 부처물에 묻혔는데 그 후 비가 와서 물이 넘칠 때면 인근에 대야 우는 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옛 사찰에 모셔져 있던 불상이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월령사 외곽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변천]
조선시대 월령사가 폐사되고 이후 다시 월령사가 세워진 것은 1930년대이다. 기록에는 월령사가 1936년 위봉사 상귀리포교당으로 계출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월령사는 1943년 포교규칙 제9조에 의해 본산을 위봉사에서 백양사로 이전 변경하였다.
1945년경에는 사명을 월령사에서 귀이사로 개칭하였다. 그 당시 주지는 한병욱 스님으로 1945년 12월에 개최된 조선불교혁신 제주승려대회에 참석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948년 제주 4·3 사건의 발발로 귀이사는 토벌대에 의해 불상을 비롯해 사찰 안에 있던 모든 불화와 불기가 사찰 전각과 함께 전소되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1962년 지학 스님에 의해 제주 4·3의 상흔을 딛고 옛 사찰의 명맥을 잇기 위하여 귀이사의 바로 옆자리인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329번지에 현재의 월령사가 창건되었다.
이후 월령사는 1988년 대웅전을 증축하고 1990년 요사 2동을 신축, 1994년 종각 및 범종 봉안, 1998년 대웅전 단청 불사까지 꾸준히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6년 월령사는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현황]
월령사에는 약 281㎡ 규모의 대웅전과 법당, 요사, 종각 등이 갖추어져 있다. 법당 내부에는 조선시대 불상인 월령사 소장 목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신도로부터 기증받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청동여래좌상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출처 : 디지털 문화 대전
바굼지 오름을 찾아가시려면,애월읍 하귀1리 일주도로 변에서 남동방향으로 700여m 지점에 위치한 오름으로 일주도로 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