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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식물,풍경/여행·산행

남도 섬 기행

by 코시롱 2009. 7. 13.

1박 2일 일정으로 남도 섬 기행을 갑니다.

먼저 제주도에서 아침 첫 배를 타고 출발하여 완도에 이르면

오전에 입항하고 완도항에서 청산도를 거쳐 다시 들어와

노화도를 거쳐 보길도에서 1박하고 다음날 돌아오는 여정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여름 시즌이 막 돌아오는 지라 한일 카 훼리 예약하기가 쉽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자주 확인을 해야 합니다.

 

제주항을 뒤로 하고 떠나 봅니다.

아드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요?

다소 철학적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여행은 설레임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기전의 설레임을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아드님에게 설명을 해 봅니다.

 

 날씨가 잔뜩 흐려 있고 간간이 비가 내려

밖의 정경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제주에서 완도까지는 배로 3시간 15분정도가 걸립니다.아침 첫 배가 8시 20분에 출항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모도와 청산도 사이를 거쳐 완도로 입항을 하게 되는데요.

 

청산도 맞은편이 대모도입니다.아래 사진은 완도에 들어가다 흐리기는 하지만

대모도 방면을 바라보고 담은 사진입니다. 

제일 왼편이 무인도인 붉은도,소안도,소모도 대모도가 되겠습니다.

완도에 도착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배편을 알아보니 10분전에 청산도행 배는 떠났다고 합니다, 다음배는 2시 40분 배인데

시간이 남아 일출공원과 청해진을 다녀 오기로 하였습니다. 

 

장보고 기념관의모습입니다.

 

왼편은 장보고 기념관 안의 모습이고 오른편은 장보고의 주 무대가 되었던 장도인 청해진이

있었던 곳입니다.

다시 완도항으로 돌아와 다도해 일출공원을 올라 가 보았습니다.

 

완도읍이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섬은 주도 라고 불리는 무인도인 섬입니다. 시간이 되어 청산도 행 배에 몸을 실어 봅니다.

 

멀리 무인도가 아름답게 떠 있고,

아름다운 섬 횡간도를 지나 청산도로 들어 갑니다. 

 

청산도는 남쪽에 최고봉인 매봉산[鷹峰山:385m]과 보적산(寶積山:321m), 북쪽에 대봉산(大鳳山:334m)이 솟아 있고 평지는 읍리(邑里)와 양중리(陽仲里) 부근에 발달하였다. 남쪽 해안에는 10∼20m의 높은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 등의 난대림이 무성하여 경승지를 이루므로 다른 섬들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다.<출처:네이버 백과>

 

 청산도 가기전의 무인도입니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고구마 등이며, 근해에서는 멸치·도미\·민어·갈치\·쥐치·장어\·문어·낙지 등의 어로가 성하고, 김·미역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특히 청산도를 비롯한 여러 섬은 김장용 멸치젓 생산지로 유명하고, 굴·미역\·조개 등의 양식도 이루어진다. 면소재지인 도청리(道淸里)와 완도(莞島) 사이에 정기여객선이 오간다.

문화재로는 읍리 하마비(邑里下馬碑:전남문화재자료 108), 읍리 지석묘(支石墓:전남문화재자료 116), 완도 당락리(堂洛里) 성터, 당락리 고분, 백련사(白蓮寺), 동촌리 봉수(東村里烽燧), 도청리(道淸里) 봉수, 부용당(芙蓉堂) 등이 있다. <출처:네이버백과>


 청산도로 들어가 서편제 촬영지가 되었던 곳을 만나봅니다.

 

 청산도 마을의 풍경입니다.

세트장 가는 길

다음은 "봄의 왈츠" 세트장을 둘러 봅니다.

 

세트장 앞에서 바라 본 청산도입니다.

 

그리고 서편제의 무대장을 둘러 보고,,,

 

 청산도를 뒤로하고

이제는 완도로 들어가 다시

화흥포항으로 갑니다. 완도항에서는 청산도 가는 배가 있지만 노화도,보길도는

화흥포항에서 타야 하는데 완도항에서 택시로 화흥포항까지는 15분정도가 걸리고 요금은 7000원 정도가 나옵니다.

화흥포항에서 노화도까지 4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오른편의 횡간도의 사자바위를 제일 먼저 만납니다.

 

노화의 동천항에 도착할 즈음 바로 앞에 있는 섬이 구도입니다.

 

그리고 보길대교와 다리 하나를 더 건너면 보길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을 하다

아들과 도라도란 이야기 나누고 같이 간 벗과 소주 한 잔 기울입니다.

다음 날...

제일 먼저 간 곳은 "송시열 글씐 바위"입니다.

지금은 탁본을 많이 해 가 버려 다시 위에 새겼다 합니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듯 하고,

 

 

조선시대 선조~숙종조의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왕실 세자 책봉 문제로 남인인 장희빈 세력에 밀려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중에 풍랑을 만나 완도에 상륙 후 해남 보길도 백도리에 머무르게 된다.북벌의 아쉬움과 임금에 대한 서운함을 마음에 담아 백도리 해변 바위에 새겨 놓았는데 그게 오늘날의 글씐 바위이다.

 

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 83세 늙은 이몸이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一言胡大罪(일어호대죄) 한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세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북녁하늘 해를 바라보며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貂襄舊萬恩在(초구만은재) 초구(임금이 하산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있어 感激泣弧(감격읍호 )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그리고 이 글씐바위를 나와 다시  예송리 전망대에서 바다를 보고 멀리

제주도를 바라 봅니다.

 

왼편으로 당사도, 그리고 예작도의 모습입니다.

 이 전망대에서 예송리로 들어 가면 예송리상록수림과

예송리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 알작지처럼 돌이 깔려 있어 파도가 일면 그 소리가 너무나 아릅답습니다.

 

 다음 간 곳은 고산 윤선도의 명승지라 할 수 있는

세연정입니다.

 

 

 

"세연정"의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주로 두 못 사이의 정자를 만들어 연회를 즐기는 곳이었습니다.

 다음 찾아간 곳은 동천석실입니다.

부용동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윤선도가 특히 사랑하여 제일의 명승이라 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부용동을 바라 볼 수 있는 동천 석실입니다.

 

윤선도가 특히 사랑하여

부용동 제일의 명승이라 칭했던 곳입니다.

이 동천 석실을 내려와 고산 윤 선도의 주된 공간이었던 낙서재와  곡수당을 찾았습니다.

 

 

곡수당은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초당,석정,석가산,평대,연지,다리 등으로

조성되어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휴식하는 공간으로 조성된 곳이라 합니다.

다시 청별항으로 돌아와 보길대교를 지나 완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주도로...

배에서 바라 본 제주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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