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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자전거·미니어쳐·전시/전시탐방·박물관

국립광주 박물관

by 코시롱 2009. 3. 9.

 

 

 

입구에 있는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불교 미술실(1층)

 

광주 서오층 석탑 사리갖춤 

 

 사리

 

 

 

 

남농 허 건 (1908-1987)

진도 출신으로 소치 허련의 손자이자 미산 허 형의 넷째 아들이다.

18세 목포에 정착한 이래 철저한 향토 고수의 작품활동울 함.

 

허건(1907년~1987년)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남종화의 대가로서 호는 남농이다.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서 조선 헌종 때 궁중화가였으며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시·서·화’ 삼정이라 불리던 소치 허유(또는 허련) 선생의 손자이며 마찬가지로 화가였던 미산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목포 상업전수학원을 졸업하고 부친으로부터 익힌 그림이 제9회 선전(오늘날의 국전에 해당)에서부터 23회까지 연속 입선하고 1944년에는 선전특선 및 총독상을 수상하였으며, 해방 후 1955년에는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이 되었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활동이 인정을 받아 전남문화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예술원활동이 인정을 받았다.

 

 

의재 허백련의 산수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의재(毅齋). 8세 때 한학을 배웠으며 증고조 할아버지뻘 되는 허련(許鍊)의 아들 허형(許瀅)에게서 묵화의 기본화법을 익혔다. 1908년 공립 진도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일본인 교장의 구타에 항의, 자퇴하고 서울에 올라와 18세에 스승 정만근의 권유로 기호학교에 다녔다. 일본에 건너가 국립 입명관대학(立命館大學) 법학과에 다녔으나 곧 중퇴하고 일본 남종화(南宗畵)의 대가인 고무로[小室翠雲] 문하에 있었다. 귀국한 뒤에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20년 목포 공회당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추경산수〉가 1등 없는 2등으로 입상했고, 6회까지 선전에 출품했다. 이후 전국을 유람하며 자연체험을 하고 1938년 광주에서 서화가들의 모임인 연진회(鍊眞會)를 발족했다. 8·15해방 후 조선미술건설본부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부터 추천작가·초대작가가 되었다. 196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그는 한국화단에서 남화의 맥을 이은 대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단아하고 깊이 있는 운필을 통하여 남화의 정신세계를 가장 진솔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2년 문화훈장 문화포장, 1966년 예술원상(미술부문)을 수상했다.

 

윤덕희의 선인

 

장승업의 꽃과 새,동물 병풍

다음은 탐매(그림으로 태어난 매화) 특별전입니다.

 

 설곡 이몽룡의 달과 매화 발매될 오만원권 지폐의 뒷면의 그림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박형구의 매화춘절

 

 

 권기수의 A blow off day-meet

차 규선의 작품

 

달빛 매화

 

 매화도

홍 석창의 홍매 

 허 달재의 홍매

위 진수의 눈 속에서 매화를 찾다 

 이 구용의 바람과 매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