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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제주의 보호수

제주의 보호수~ 회화나무

by 코시롱 2021. 11. 2.

 

어제의 회화나무를 포스팅하고 오래 전부터 제주의 보호수를 담고 있던 터라

제주에도 보호수로 회화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250년 되었다는

회화나무를 만나러 가 보았습니다.

 

 

 

 

 

회화나무의 잎들이 가을이 되면서 떨어지고 있었고 250년이나 되었다는 보호수 안내판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제주에서 만나는 팽나무나 느티나무, 곰솔, 소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의

보호수와는 그 모습이 세월만큼 우람하지 않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근처를 살펴 보았습니다.

 

 

 

 

 

 

수고, 즉 높이는 9미터, 나무둘레는 2.7미터인데 아마 이 회화나무가 잎이 달려 있을때

기록하였거나 일부 가지가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닌지 9미터에 미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 물어 보니 며칠 전 이 회화나무 근처의 소공원을 정비하고

이 회화나무도 외과수술을 받았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자생하지 않은 이 회화나무가 어떻게 이 곳에 살게 되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추측컨대,

 

조천의 옛 모습에 조천을 드나들던 관리나 학자가 심어 놓지 않았을까하는 것입니다.

조천은 제주시 화북과 함께 제주의 오래된 항구로, 육지로 연결되는 관문이었습니다.

제주로 부임하는 관리, 유배객, 육지를 오가는 장삿배 모두 이 두 항구로 들어왔고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에 조천관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천관은 바다 어귀에 있는데,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바람을 관측하는 곳이며

 조천(朝天)이라 이름을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부터 선비가 살던 옛집이나 무덤 주위에 즐겨 심었고, 향교나 궁궐·사찰 경내에서

대거목을 볼 수 있는 이 회화나무를 그 당시 관리나 학자가 심었다는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라고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회화나무의 근처에 연북정이라고 하는 누각이 있는데

연북정이라는 하는 이름은 선조 32년(1599년) 성 윤문 목사가 누각을 수리하고 붙인 이름입니다.

오매불망 북쪽을 사모하고 임금을 그리워하고 불러 달라는 연북<戀北>을 사용하였는데

그 이전의 이름은  1590년(선조 23)에 이옥 절제사(李沃節制使)가 성을 동 북쪽으로 물려 쌓고

 그 위에 옮겨 세워 쌍벽정(雙壁亭)이라 하였는데 쌍벽정보다는 연북정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쌍벽정은 군사시설이자 바람이 잣기를 기다리며 순풍을 바라는 휴식처였던 것이

후대에 임금을 사모하는 연북으로 바꿔 의미가 다르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북정>

 

이 회화나무가 심어진 곳에 작은 소공원을 만들어 회화나무 20~30여 그루를

식재하여 그 나무들도 열매가 맺고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오래된 팽나무, 송악, 멀구슬나무도 같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식재된 회화나무에 열매가 가득 달려 있습니다.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설레이는 건 이런 열매를 만나고

나무와 이야기하고 이 나무가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의 궁금증에 대한 의문이

저를 나무로 야생화로 이끌게 합니다.

 

 

 

 

 

제주의 보호수 회화나무로 열어보는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고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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