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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제주사랑·축제

오백장군 이야기-펌-

by 코시롱 2008. 12. 12.

영실(靈室)의 ‘실‘은 골짜기의 옛말로서 室(실)이라는 한자를 빌어 표기하고 있으며, 영실이란 산신령이 사는 골짜기 즉 신령스런 곳이란 뜻이라고 한다.

아득한 옛날 한 어머니가 아들 5백을 낳아 이 한라산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식구는 많은데다 집이 가난하고 마침 흉년까지 겹치니 끼니를 이어가기가 힘들게 되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어디 가서 양식을 구해 와야 죽이라도 끓여 먹고 살게 아니냐≫고 타일렀다. 오백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큰 가마솥에다 불을 때고 솥전위을 걸어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다. 그러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어머니는 죽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백형제는 돌아와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여늬 때보다 죽이 맛이 좋았다. 맨 마지막에 돌아온 막내동생이 죽을 뜨려고 솥을 젓다가 이상하게도 뼈다귀를 발견했다.
다시 잘 저으며 살펴보니 사람의 뼈다귀임이 틀림없었다. 동생은 어머니가 빠져 죽었음이 틀림없음을 알았다.
≪어머니의 고기를 먹은 불효의 형들과 같이 있을 수가 없다.≫ 동생은 이렇게 통탄하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 (遮歸島)으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그만 바위가 되어 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그제야 사실을 알고 여기저기 늘어서서 한없이 통곡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그러니 영실에는 499봉이 있는 셈이고 차귀섬에 막내동생 하나가 떨어져 나와 있는 셈이다.
차귀섬의 오백장군은 대정읍의 바굼지오름(簞山) 에서 훤히 보인다.
어느 해였든가, 어떤 지관 (地官)이 바굼지오름 에서 묏자리를 보게 되었다.
지관은 정자리를 하나 고르고는 ≪이 묏자리는 좋긴 좋은데 차귀섬의 오백장군이 보이는 게 하나 흠이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상제는 ≪묏자리만 좋으면 그것쯤 없애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고 차귀섬으로 건너갔다.
그래서 곧 도끼로 그 바위를 찍기 시작했으나 워낙 큰 바위라 없애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귀섬의 오백장군에는 도끼로 찍어 턱이 진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출처 : 디지털 문화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