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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기념관

by 코시롱 2009. 7. 28.

남도 여행길에 장보고 기념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장보고

장보고는 청해진(현 완도) 출생으로 780년대 후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였으며 활과 창을 잘 다루는 무인 기질을 타고 났다. 그의 이름 장보고도 활을 잘 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궁복(弓福) ,궁파(弓巴)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인 ‘활바’ 또는 ‘활보’라는 이름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유래된 이름이다.

<출처:완도군 홈피>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배의 형상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1200년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장보고 대사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2008년 2월 29일 개관한 곳입니다.

 

 중국남송 시대의 천주만 해선 모형입니다.

  동.서 문화사절단 중국 선박들의 모형입니다.

 

통일 신라시대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외래 문물에 대한 욕구가 점차 강해지던 시기다.
관무역으로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자 민간인들의소규모 사무역이 시작되고 있던 이 때, 장보고는 세계를 무대로 초국적 민간자유무역을 발전 시켰다
중국물건이 수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나 일본의 무역품들도 활발하게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일본과의 무역도 활발했다.
일본 귀족들에게 공급된 여러가지 생활용품 중에는 신라에서 생산된 것을 거래하는 직접무역과 함께, 이슬람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에 들어온 것을 일본에 연결하는 중계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출처:완도군청 홈피>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 천주

 

 여고 강선의 모형인데요.당대 주로 하천과 연안지역을 주로 항해하던 범선으로

1973년 강소성 여고현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다음은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서...

 

갈대를 상징하는 LED 조명을 헤치면서 1200년전 장보고대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제1전시실은 완도 개요 장좌리와 죽청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장보고의 유적, 법화사지, 장도 청해진 유적, 문헌 속 장보고, 장보고대사의 인적 ,지역적 네트워크라는 주제로 전시가 연출되어 있습니다.<출처:완도군청 홈피>

 

 다음은 제2전시실의 모습입니다. 제2전시실은 장보고 선단의 무역활동을 주제로

주로 중국과 일본에서의 활동을 전시해 놓은 공간입니다.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계절풍과 항해

 

다음은 청해진의 모습입니다.

 

당에서 귀국한 장보고가 서남해안에 출몰하던 당의 해적활동을 근절시킬 목적으로 흥덕왕에게 청해에 군사를 주둔시킬 것을 주청하여 허락을 받아 설치했다. 당시 청해진에 배치된 1만 명의 군사는 장보고 개인이 모집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장보고의 직함이 다른 군진의 책임자와는 달리 '대사'(大使)라는 특별한 칭호였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청해진을 근거지로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에는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 일본에는 회역사(廻易使)를 보내는 등 활발한 해상무역을 전개했다. 일본의 승려 엔닌[円仁: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최훈(崔薰)이라는 인물이 청해진 병마사(兵馬使)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청해진은 신라 지배체제의 외곽에 위치한 일종의 해상왕국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축적된 부와 군사력을 배경으로 장보고는 중앙정부의 권력전에도 관여하여 왕위계승전에 패한 김우징(金祐徵)과 김양(金陽)을 받아들인 뒤 지원군을 보내어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딸을 문성왕의 차비(次妃)로 들이려고 한 시도가 진골귀족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는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846년(신무왕 8) 중앙정부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당했다. 그뒤 이창진(李昌珍) 등의 잔여세력에 의해 일본에 무역선을 보내는 등 활동을 계속했으나 851년에 청해진을 파하고 그 주민을 벽골군(碧骨郡:지금의 김제)으로 이주시키면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청해진이 설치된 곳은 완도 본도에서 170m 정도 떨어진 장도(將島)인데 섬 둘레를 외성과 내성으로 축성한 흔적과 경사가 완만한 섬의 남서쪽에는 목책(木冊)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사적 제308호 '장도청해진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출처:다음백과>